까마득한 시간처럼 여겨지는 1963년 계묘년에 태어나 육십을 이제 갓 넘겼다. 열두 갑자를 다섯 번 넘기고서야 팔팔했던 성마름이 깎여나간 걸 알았다. 그럭저럭 둥글둥글하게 산 것이 나름 터득한 인생 진리라면 약력에 넣어도 되지 않을까.
어쭙잖게 2018년 고용노동부 주관 제39회 근로자 문학제에서 단편소설 「땅개」로 금상을 받으면서 시작한 글 작업이 십 년에 가까와진다. 여러 곳에서 크고 작은 글을 투고하며 나름 작가 체면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얼마 전엔 장편소설 『대금 소리』를 재출간했다.
(사)인본사회연구소 계간지 《인본세상》에 단편소설을, (사)목요학술회 월간지 《시민시대》에 콩트를 다수 연재하였다. 현재 (사)인본사회연구소 《인본세상》 편집위원·경부울 문화연대 스토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가의 말〉
정수리로 하늘을 이고만 다녔지 그 아래 눈으로 하늘 보긴 쉽지 않았습니다. 사는 게 바빴나요. 사실 뒤돌아보면 그다지 바쁘게 살지 않은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32m까지 올라가는 스카이차를 보고 있으려니 건물 끝에 앉은 하늘로 눈이 옮겨지더군요.
예전엔 미장 칼로 쓱 흩고 간 하늘이 좋았습니다. 맑고 티 없는 하늘이 좋았습니다. 솜씨 좋은 미장공의 손에 다듬어진 것 같은 하늘이 좋았지만, 어느 날 그런 하늘에 싫증이 났습니다. 아마 그래서 하늘을 더는 보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스카이차 위로 검고 뿌연 색에 전갈처럼 꼬리를 세운 구름이 내려앉았습니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자, 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습니다.
“그래, 스카이차가 전복되는 거야. 하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전갈의 꼬리를 잡고 오르는 거야. 거룩한 하늘은 성을 내고. 자기 꼬리를 잡고 오르려는 자를 빗물을 뿌려 떨어뜨리는 거지. 그게 안 되면 천둥을 불러 놀라게 하고, 또 아니면 번개를 불러 찌르는 거야. 지가 안 죽고 배겨. 자, 자. 자꾸 상상의 나래를 펴자구. 스카이차가 있구, 하늘이 있구, 악마를 태운 구름이 있구, 죽을 사람이 있구. ”
황당하지만 내 소설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쇠락한 나뭇잎을 같이 밟는 지인이 던져준 한마디에 소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글과 인연을 맺으려 했던가 봅니다. 그중 처음 인연이 된 소설이 『골분』이고 원제목은 『땅개』였습니다. 대충 내용을 간추리자면 이렇습니다. 고향으로도 꺼릴 화장막에 기대 사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곳으로 한 여자가 흘러들어오고, 그 여자는 개 잡는 일을 하고, 인간의 폭력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던 개는 돌아와서 폭력으로 대하던 죽은 자가 묻힌 땅을 파헤치는 장면…, 이것이 소설 창작의 첫 시작입니다. 소설 『골분』은 무자비한 폭력을, 개를 통해서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초겨울 한밤중 물대포를 쏘아 죽음에 이르게 한 경찰에 분개해서 쓴 소설은 『명암방죽』입니다. 소설 배경과 사건은 한참 과거지만 민주주의 시대에도 그들의 폭력적 뿌리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걸 『명암방죽』을 통해 밝히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서 하룻밤 자고 가라며 팔목을 잡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하루 밥 세 끼만 먹으면 되는 같은 처지인데도 돈에 목말라하는 꽤 나이 든 여자였습니다.
워낙 힘 있게 잡았던 지라 뿌리치기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유곽의 그 여자가 그렇게 잡은 것은 우연히 걸린 고기라도 놓쳐선 안 되겠단 굳센 마음이 앞섰던 거겠죠. 부채처럼 껴안은 목숨줄을 어쨌든 버티고 살아야 하니까. 그때 생각난 게 『부산을 쓴다』에서 나온 천종숙 시인의 「춘화도」였습니다.
세월이 빠르게 달려가는 길목이었어
몇 번의 봄이 지나가고 있었는지 몰라
- 중략 -
춘화 속의 여자는 늙어가는 사내의 손길에도
빛 바랜 추파를 던지고 있었는데
비틀린 웃음처럼 서글퍼 보이는 거야
이렇게 시를 통해 나온 소설이 『완벽한 그림』과 『십계』입니다.
우울하기만 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중 한 편은 『』고 또 한편은 『문門』입니다. 거기선 곳곳에 내가 들어가 있습니다. 『』에선 잔약하고 무른 정희라는 아이가 저였습니다. 『문門』에선 똥종이를 햇살에 비추는 아이와 뭐든지 다 알겠다면서도 막상 아무것도 모르고 가난에 허덕이는 봉근이가 저입니다.
글 나부랭이 좀 안다고 뻐기고 한 적도 없고 글로 스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왕 글 쓴 거 길게는 가고 싶었습니다. 비틀즈의 ‘링고 스타’처럼 말이죠.
드럼 스틱을 잡은 링고 스타가 오죽 드럼을 못 쳤으면 폴 매카트니가 대신 쳐주었을까마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존 레넌, 조지 해리슨, 폴 매카트니, 이들 사이에서 링고가 살아남은 것은 그저 때 묻지 않은 천진함이었겠죠. 열광적 팬에게 총 맞아 죽은 존 레넌과 58세 젊은 나이에 폐암 걸려 죽은 조지 해리슨, 음악적 부침을 거듭한 폴 매카트니. 이들에 비해 음악성은 다소 떨어져도 생을 다 누리고 산 스타 ‘링고’를 닮고 싶습니다. 남들 하기 힘들다는 소설이란 거룩한(?) 작업에 한때 몸담았으나 주변을 맴도는 스타 ‘링고’처럼 사는 게 꿈이죠. 가는 똥 누고 오래 가자는. 이제 그래서 ‘글씀’이란 오랜 시간 속에 나온 나의 단편 소설집은 가는 똥에 불과합니다.
이 소설을 그래도 눈여겨보곤 지원금 교부를 결정해 주신 부산문화재단에 이 지면을 빌려 감사하단 말씀을 올리고, “발문을 내가?” 어렵다고 하면서 맡아주신 이종진 브니엘고등학교 교장 선생님께도 감사 인사 올립니다.
교정과 편집은 물론 쉼 없이 소통하며 내 부족함을 일깨워준 푸른고래 출판사 대표 오창헌 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나와 학교 우정, 생활 우정, 취미 우정, 정치 우정을 함께 쌓고 나눈 모든 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끝으로 매일 힘들다 그만두겠다 하면서도 끈덕지게 버텨내며 서울 생활을 잘해 나가는 딸, 고맙다.
2024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