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감정 공사비 초판이 발행된 것이 2015년이니 벌써 5년이 지났다. 초판을 준비할 때는 감정서를 작성하는 감정인으로서 인용된 사례에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적용논리에 허점이 있는 것은 아닌지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기에 그때는 사례로 든 감정을 할 때 겪었던 것들을 돌이켜볼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타인이 작성한 감정서를 검토하는 입장에서 개정판을 준비하다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의 긴장과는 달리 사례가 된 감정 각각에 대한 기억과 이기상 소장님과의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보고서를 쓰다가 의심이 생겨 현장을 몇 번씩 다시 가봤던 일, 기성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내역서를 작성해봤던 일, 공사비 산출을 위해 부위별로 철근, 콘크리트, 거푸집 시공량을 구분하여 산출했던 일, 설계비 감정의 틀을 만들기 위해 설계도서 기성고 비율 산출양식을 24번에 걸쳐 수정했던 일,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고 감정의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감정기준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견해차이로 소리 높였던 일, 법원 민원실에 제출하러 간 직원을 불러 세워 보고서를 회수하고 수정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돌이켜 보니 이 모든 일들이 애정이었고 열정이었다. 이제는 모든 감정인들이 이와 같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동안 법원에 소속되어 감정서를 검토하고 재판부에 의견을 제시하면서 안타까운 경우를 많이 봤다. 오류가 있는 보고서가 제출되었을 때다. 감정인은 정작 자신의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당초 감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것이 확인되어도 상당수 감정인이 이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자의 경우 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사실관계 확인이 용이하며 당사자들 또한 이미 보수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에 감정결과에 대한 논란이 크지 않다. 하지만 공사비의 경우 감정인의 적용기준에 따라 감정결과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건설소송에서 법원이 인정한 기성고 공사비 개념에 맞지 않는 감정서가 제출되고 있다. 감정인이 기성고 공사비 감정에서 기시공 부분에 소요된 공사비와 미시공부분에 소요될 공사비의 의미를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기시공 공사비를 산출함에 있어 임의로 공종별 할증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 대해 사실조회를 통해 할증근거를 물으니 민원으로 공사가 지연되어 공사비가 증가되었는데 이를 공사의 난이도가 높아진 것으로 인정하여 할증했다고 회신하였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건설감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감정인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며, 소송특성상 감정서가 공개되지 않으니 설사 감정이 잘못 되었다 하더라도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에 정답은 없다. 감정인마다 갖고 있는 지식과 경험이 다르며 판단기준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과 일반화된 규칙 및 상식에 근거한 감정결과라면 이해와 더불어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앞에서와 같이 일반화된 규칙도 모른 채 감정을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평생교육은 100세 시대만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인들에게도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20년을 시공현장에서 근무한 시공기술사도 공사비집행은 못해봤을 수 있다. 더욱이 공사만 하였다면 설계변경이나 공기연장 간접비 등에 대한 것은 모를 수 있다. 설계의 대가라 하더라도 설계비를 단계별로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디서 이와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도 없다. 그래서 책이 필요하다. 책에 있는 예시를 통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제시된 방법에 대한 고민을 통해 보다 나은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불교용어 중 보시(布施)가 있다. 널리 베푼다는 뜻으로 자비의 마음으로 타인에게 조건 없이 나눠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쓰는 것도 보시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요즘이야 의미가 퇴색되었지만 한동안 노하우(know how)가 화두인 시절이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지식이나 기술을 돈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으로 핵폭탄도 만들 수 있는 지금은 노하우란 말 자체가 쓰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논리적인 근거에 따라 무언가를 정리하여 제시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식이나 기술 분야의 책을 쓰는 분들을 존경한다.
더욱이 꾸준한 노력을 통해 기존의 것들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타인의 이익까지 도모하는 분들을 존경한다. 내 것을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초판에 이어 개정판을 준비하며 다시금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곁에 이와 같이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내는 분이 있다는 것에 감사드렸다. 이 글을 빌려 이기상 소장님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한다.
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