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8일 : 60호
영혼을 박박 닦고 싶은 날
혼란스러운 12월을 지내며 영혼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박박 닦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 세상에 말이 너무 많고 그 말이 흘러들어오면 탁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 영조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 '귀씻이'를 했다고 하는데요... ) 이럴 때 첫 눈의 감각을 닮은 차유오의 첫 시집을 펼쳤습니다.
비누는 작아지는 버릇이 있었다
(...)
비누는 그런 자신을 멈추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깨끗함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순수한 기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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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12월을 지내며 영혼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박박 닦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 세상에 말이 너무 많고 그 말이 흘러들어오면 탁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조선 영조는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생각해 '귀씻이'를 했다고 하는데요... ) 이럴 때 첫 눈의 감각을 닮은 차유오의 첫 시집을 펼쳤습니다.
비누는 작아지는 버릇이 있었다
(...)
비누는 그런 자신을 멈추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깨끗함을 갖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순수한 기쁨> 부분
시를 읽는 동안 멈춰 마음을 물에 헹궈 보았습니다. '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 /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침투> 중)을 읽을 때는 잠영을 할 때의 감각을 떠올려보았고, '잘못 그린 그림은 찢지 말고 / 조금씩 지우면서 그려보라고 말해 준 사람' (<얼굴들> 중)을 생각할 때는 수리하고 고쳐 쓸 용기가 생겨나는 듯도 했습니다.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달라지는 시집, 손바닥을 펼치면 꼭 그 손바닥 자국만큼은 맑아지는 시집을 소개합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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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21쪽 :
눈이 녹아가도
그 안에는 녹지 않는 마음이 있어
그것이 사라져도 것을 기억할 수 있다는 뜻이야
<녹지 않는 겨울> 부분
Q :
배가 기울면 가장 먼저 기척을 감지하고 배를 떠나는 것이 '쥐'들이라고 하는데요. <타운하우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쥐'처럼 유독 기척을 빠르게 감지하는 민감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민감한 사람들이 살기 참 어려운 시국인데요, 첫 소설집 출간 후 어수선한 이 시기를 잘 보내고 계신지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A :
12월 3일에 책이 발행되었어요. 그 날짜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여러 의미로요. 그날 밤 이후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사로잡혀 지내왔습니다. 저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 둘러싸여 지낼 때가 더 많아요. 사실 연중 글 쓰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글을 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저의 소속집단은 성향이 몹시 다릅니다. 시국에 대처하는 자세 역시 다르지요. 평소에는 그 경계에 서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제가 사는 세계의 고요함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어째서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지 의아했어요. 어떤 의견이든요. 모두 광장으로 뛰어나가는데, 제 주변은 미동이 없었어요. 그저 모두 피로해 보였습니다. ‘이런 평온함은 온당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다가 깨달은 점은, 제가 여느 때와 달리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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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배가 기울면 가장 먼저 기척을 감지하고 배를 떠나는 것이 '쥐'들이라고 하는데요. <타운하우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쥐'처럼 유독 기척을 빠르게 감지하는 민감한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민감한 사람들이 살기 참 어려운 시국인데요, 첫 소설집 출간 후 어수선한 이 시기를 잘 보내고 계신지 근황을 여쭙고 싶습니다.
A :
12월 3일에 책이 발행되었어요. 그 날짜를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여러 의미로요. 그날 밤 이후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사로잡혀 지내왔습니다. 저는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 둘러싸여 지낼 때가 더 많아요. 사실 연중 글 쓰는 사람들과 만나는 일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글을 쓸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저의 소속집단은 성향이 몹시 다릅니다. 시국에 대처하는 자세 역시 다르지요. 평소에는 그 경계에 서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번만큼은 제가 사는 세계의 고요함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어째서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지 의아했어요. 어떤 의견이든요. 모두 광장으로 뛰어나가는데, 제 주변은 미동이 없었어요. 그저 모두 피로해 보였습니다. ‘이런 평온함은 온당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다가 깨달은 점은, 제가 여느 때와 달리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그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Q :
<말의 눈>의 타운하우스의 태풍,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의 연못과 비, <언캐니 밸리>의 폭설처럼 소설집 속 재난은 습기와 함께 옵니다. 감각적으로 함께 예민해지는 소설인데요, 습한 날씨에 대한 전지영 작가의 특별한 감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
저는 제 몸이 가끔 습도계 같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물기에 굉장히 예민해요. 습도와 신체 증상 간의 상관관계에 의학적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요. 비나 눈이 오기 전에는 굉장히 심한 두통에 시달립니다. 그러다가 눈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마법처럼 두통이 싹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는 습한 날씨가 어떤 ‘징조’ 같은 역할을 해요. 갈등이 누적되어 한계에 이르는 순간을 쓸 때, 본능적으로 습한 날씨에 인물을 밀어 넣곤 합니다. 서사의 변곡점은 주로 습기가 해소될 때입니다. 예를 들면,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에서는 비가 격렬히 내리는 날 화자가 자기 인식의 전환을 맞이하지요.
Q :
작품집을 읽은 후 작가께서 어떤 작품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타운하우스>를 읽은 독자가 다음 차례로 찾아보시면 즐거워 할 만한 소설, 혹은 드라마와 영화 등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책, 특히 소설은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는 편입니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장르 소설을 찾아서 읽어요. 읽으면서 문장의 리듬과 속도를 되찾으려고 노력합니다. 페트리샤 하이스미스, 레베카 듀 모리에, 기리노 나쓰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을 다시 펼쳐요. 특히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은 여러 번 완독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움을 발견합니다.
최근 읽은 작품 중에는 윌리엄 켄트 크루거의 <철로 된 강물처럼>이라는 책이 인상 깊었습니다. 1961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일어난 다섯 개의 살인 사건과 그 사건을 통과하며 성장하는 열세 살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긴장감이 다소 낮은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는데, 마지막에 이르러 죽음, 신앙, 구원의 문제에 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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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크리스마스 인사를 드리며 이 책을 꺼내보았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미니멀리즘과는 어울리지 않는 절기(?) 같습니다. 말이 많아도 좋고, 일정이 분주해도 좋고, 트리에 오너먼트가 많아도 좋고, 식탁이 묵직해도 좋습니다. 광화문에 불시착한 외계인이 자몽을 닮았기 때문에, 아이돌 출신 자몽 연구가 나영은 우주 평화의 중책을 맡게 됩니다. 소란한 우주활극이 펼쳐지는 김원우의 장편소설, 2022 문윤성 SF 문학상 장편 대상작입니다.
한때 <스타트렉> 팬덤의 열렬한 구성원이었던, 잠시 아이돌 활동을 한 적도 있는 나영의 투쟁은 2024년의 케이팝이 흐르는 광장과도 연결됩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인터내셔널의 평화를 향해 응원봉을 높이 듭니다.
본캐가 의사인 득수의 김강 대표는 마흔 중반이 넘어서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소설 쓰는 일이었죠. 소설가로 등단 후, 의사 모임보다 작가 모임에 더 자주 들락거렸고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낼 만한 출판사를 찾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022년 4월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아, 지금 이 이야길 하는 저는 득수의 편집장입니다. 암튼. 좋은 작품을 쓰고 있는 지역 작가와 신인 발굴을 목표로 야심 차게 도서출판 득수, 간판을 걸고 아니, 사업장을 내고 이래저래 책을 출간했는데 인지도 없는 출판사에 이름도 낯선 작가들의 책을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 까는 것은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 출판사를 연 그해 12월,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 여기까지 이야길 하는데 숨이 차는 이유는 왜일까요^^ 지역민들에게 우리 지역에 문학을 기반으로 한 출판사가 있고 그 출판사에서 출간된 작가들의 책을 소개하고 나아가 포항에서 문학전문서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책방 수북을 열었을 때 김강 대표는 정말 그렇게 된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을 그려보았다고 합니다. 아……, 그랬다고 합니다.
출판사만 열면 사람들이 우리 책을 착착 사고
책방 문만 책 살 사람들이 우리 책방에 착착 모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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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캐가 의사인 득수의 김강 대표는 마흔 중반이 넘어서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소설 쓰는 일이었죠. 소설가로 등단 후, 의사 모임보다 작가 모임에 더 자주 들락거렸고 지역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이 자신의 책을 낼 만한 출판사를 찾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2022년 4월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었죠. 아, 지금 이 이야길 하는 저는 득수의 편집장입니다. 암튼. 좋은 작품을 쓰고 있는 지역 작가와 신인 발굴을 목표로 야심 차게 도서출판 득수, 간판을 걸고 아니, 사업장을 내고 이래저래 책을 출간했는데 인지도 없는 출판사에 이름도 낯선 작가들의 책을 오프라인 서점 매대에 까는 것은 더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 출판사를 연 그해 12월,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 여기까지 이야길 하는데 숨이 차는 이유는 왜일까요^^ 지역민들에게 우리 지역에 문학을 기반으로 한 출판사가 있고 그 출판사에서 출간된 작가들의 책을 소개하고 나아가 포항에서 문학전문서점으로 자리매김하고자 책방 수북을 열었을 때 김강 대표는 정말 그렇게 된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을 그려보았다고 합니다. 아……, 그랬다고 합니다.
출판사만 열면 사람들이 우리 책을 착착 사고
책방 문만 책 살 사람들이 우리 책방에 착착 모이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런 일들은 정말 일어나질 않았습니다. 고민은 길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가진 건 다 써보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작가와 함께 수북수북>이었습니다. 지역을 뛰어넘어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를 모시면 문학 욕구에 목마른 지역민을 만날 수 있겠구나, 싶어 한 달에 한 번 북토크를 열었죠. 지금까지 정지아, 이산하, 백가흠, 문태준, 방현석, 고명재, 천운영 등 많은 작가님들이 다녀가셨답니다. 그리고 2019년부터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모시고 진행된 북토크 <언니네책바당>을 책방으로 영입했죠. 그래서 수북에서는 정기적으로 한 달에 2번, 지역 안 작가 북토크와 지역 밖 작가 북토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본캐가 출판사 대표 쪽으로 몸이 기운 김강 대표는 지역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에게 관심을 쏟았습니다. 젊은 클래식 단체 [레마앙상블]을 후원해 매주 일요일 오후, 수북에서 클래식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살롱콘서트 플로우>를 하였고, 포항청년작가회와 협업해 책방 안에서 지역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한칸전시>를 열었습니다. 아, 그랬습니다. 그리고 2023년 8월 출판사 건물 2층에 갤러리 수북 간판을 시작하죠.
도서출판 득수
책방 수북
그리고 갤러리 수북
책을 매개로 한 전시만 기획전으로 하는 갤러리 수북에는 얼마 전 김주대 문인화전 <꽃이 져도 오시라2>를 한 달간 진행했습니다. 이것저것 열심히 할수록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무엇보다 소설가로 불리는 게 가장 좋다는 김강 대표와 출판사, 책방, 갤러리를 넘나들며 맡은 바 일은 닥치는 대로 해내는 직원들이 있는 이곳. 포항에 한 번 오셔요.
- 도서출판 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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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미치게'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놓아봅니다. <남은 건 볼품없지만>의 배기정의 장편소설. 한때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지금은 트로트 가수로 전업한 '지세준'은 엠마트 개업 무대 '직캠'(팬이 직접 찍은 영상) 으로 유튜브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오르며 인생역전을 경험합니다. 이 영상을 촬영한 '홈마'(홈페이지 주인) 연희정은 자신의 영상과 바이럴이 가진 힘을 경험하며, 자신이 지세준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괄호 속 풀이말 없이도 이 용어들을 물흐르듯 읽을 수 있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힐 소재가 이어지는 소설입니다.
한 장르의 대가, '아이돌 팬의 대변인' <환상통> 이희주의 소설도 함께 읽을 만합니다. 야만의 시대였던 1900년대 말. 한 아이돌을 각자의 방식으로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최애를 '납치'한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대형 출판사 하퍼콜린스, 영국 대형 출판사 팬 맥밀런과 1억 원 대 선인세로 판권 계약을 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