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늦은 밤 편의점 계산대 앞에서 당신을 만나다니
당신은 맥주를 사러 왔고 나는 라면을 사러 왔는데
편의점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죽기 전에 잠깐 당신을 만날 수 있다니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당신은 아직도
겸손의 손으로 캔맥주를 들고
당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나는
교만의 손으로 컵라면을 들고 그리운 눈인사를 나누며
아직도 사랑하는 척 부모님 안부를 묻는다
창비 출간 정호승 시집 구매 시 선택 (마일리지 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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