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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생물들은 진화를 거쳐왔다. 그것은 몇십만 년, 심지어 몇백만 년 단위로 측정되는 무척 느린 과정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생물 가운데 오직 하나, 인간만은 생물학적 진화와 구분되는 또 하나의 진화 과정을 만들어냈다. 이 두 번째 진화는 유전자 변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정보와 기술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며 지식을 축적하고, 다른 이들과 공유하도록 만들어주는 전파 과정이다. 이 축적과 저장, 공유의 과정은 늘 원만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단절되고 때로는 변형되며 왜곡되고 잊혔다가 긴 시간이 흘러 미미한 흔적만 간신히 다시 발견되어 새롭게 재탄생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인간의 지혜를 담아 저장하고 공간과 시간을 넘어 공유하는 두 번째 진화에는 특별한 도구가 이용되는데, 우리는 이를 ‘문화’라고 부른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가 필요하다. 문화는 우리 존재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며, 각 시대의 인류는 최선의 도구를 찾기 위해 과거로 눈길을 돌려왔다. 로마 제국은 자신들이 정복한 그리스의 문화를 향유했고, 당나라는 인도의 종교인 불교를 수용했으며, 바그다드는 이슬람 이전의 지식을 집대성했다. 하버드대 마틴 푸크너 교수는 4천 년에 걸친 인류 문화의 15가지 이야기를 정리한다. 시대와 대륙을 초월한 각기 다른 개성의 이야기는 인간이 어떻게 다른 문화를 빌려오고 기존 문화와 혼합하며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들을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자기 문화의 우수성을 내세우고 타지의 문화를 배척하는 국수주의의 시대. 책은 폐쇄된 세계에서 과연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는지 도발적으로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