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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같은 판, 같은 쇄의 책을 산다는 게 같은 시기 이 책을 함께 구매한/할 천 명 내외의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일로 느껴진다. (책이 절판되는 사무적인 이유는 많고 많지만) 찾는 사람의 시간과 책이 살아있는 시간이 어긋날 때, 책은 시장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작별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책을 놓쳐본 사람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한다. 여타의 사정으로 아주 오래 유통되지 않은 김보영의 초기 소설집이 다시 우정의 항해를 시작한다. 12년 만에 복간된 이야기. 봉준호 감독 추천, 전미도서상 후보작에 오르기도 했던 두 권의 소설집, <멀리 가는 이야기>와 <진화신화>에 실렸던 소설을 개고해 다시 엮었다.
"내 상태는 나의 일부다. 바꿀 마음이 들지 않는구나."(9쪽) 첫 단편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의 첫 장만 읽어도 충분하다. 왜 모든 병이 치료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 김보영의 눈으로 다른 감각을 일깨워본다. 다시 책이 유통되어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기쁨"을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나는 내가 쓴 문장을 다시 읽어본다. 저 문장이 어떻게 다가갈까? 읽을 수 없는 사람에겐, 책을 살 수 없는 사람에겐, 사람이 아닌 존재에겐... '김보영은 인간의 경험에 대해 장르를 바꾸는 시각을 제공한다'는 퍼블리셔스 위클리의 말대로 김보영의 소설을 읽으면 (청인인 나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새삼스러워지고, 내 발 아래 지표면이 있다는 게 낯설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어 이 책을 다시 읽을 수 있어 기쁘다. 김보영의 좋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초판 1쇄, 그 이후 2쇄, 3쇄를 함께 읽으며 김보영 소설의 멋짐에 대해 이별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