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천선란 소설집. 그는 장르소설을 쓰는 소설가로 알려져있다. SF와 판타지와 호러를 넘나들며 천선란의 소설은 세계를 상상한다. 하지만 그 세계가 우리의 현실과 전혀 상관없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회용품 쓰레기를 먹고 몸집을 부풀리는 '바키타'(<바키타> 中)의 출몰에 기뻐하며 다시 멸망 이전 시대의 사람들처럼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는 인류. 바키타는 무한히 쏟아지는 쓰레기를 먹으며 무한히 자란다. '공룡이 사라졌듯 인간도 사라져야 할 때가 다가왔을 뿐이므로'(90쪽) 이제 지구가 아닌 곳에서의 생존을 준비해야하는 <푸른 점>의 미래인류는 어떨까. '우리는 식량난 시대에 살고 있다'(113쪽)는 수업을 학교에서 받는, 유전자조작 옥수수로 가득찬 밭의 형제들의 모습은 또. (<옥수수밭과 형> 中) 전국적인 가뭄, 사라지는 꿀벌, 방글라데시에 가득 쌓인 버려진 옷의 강. 2022년의 우리는 어느새 소설 같은 세계를 산다.
"모아놓고 보니 소설이 다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두번째 소설집을 엮으며 천선란이 말했다. 경이롭고 으스스한 열 편의 이야기. 지난 2년간 팬데믹을 통과하며 천선란을 거쳐온 이야기들이 여기에 놓였다. 이름을 잃은 채 구천을 떠돌던 <-에게>의 혼령은 광화문에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장을 만나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낼 실마리를 얻는다. 천선란의 소설이 우리의 세계에 이름을 붙여줄 때, 우리 역시 이 세계를 살아야 할 실마리를 조금쯤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