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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무언가에 관한 정의(definition)는 '~아님'의 집합으로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자아에 관한 정의를 내릴 때, 개개 인간의 모든 면모는 스펙트럼 상에 있는데 어떻게 한 점을 콕 집어 '나는 이것'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절대 되거나 할 수 없는 범위의 여집합으로서만 정의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그것도 대체로 쉽진 않긴 하지만. 이는 '읽기'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읽지만(그것이 책이 아니더라도) 모두의 읽기 방식은 제각기 다르며 자신의 읽기에 대해 단정 지어 말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동시에 같은 글을 '읽었다'라고 말할 때, 사실은 완전히 다른 개념의 활동을 했는지도 모른다.
설명이 조금 필요할 것 같다. 책에서 말하듯 읽기의 핵심 요소는 '인식'과 '이해'인데, 이 둘의 비율에 따라 읽기 개념의 정의는 달라질 수 있다. 눈으로 읽었으나 단 한 문장의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 의미에 대한 이해가 없으나 내용을 모조리 외운 경우, 교정, 교열을 보느라 문체에 대한 판단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 스토리라인에 집중하느라 소소한 세부사항이 모두 잘못 표기된 사실은 눈치채지도 못하는 경우... 우리는 이 모든 경우에 '읽는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니 역사상 읽기가 무엇인지가 정확히 정의된 적은 없었고, 이 책은 '이것도 읽기인가?' 물음표를 붙이게 되는 사례들을 가져와 읽기와 읽기 아님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읽기를 설명해보려 한다.
그 사례들은 이런 것이다. 난독증 당사자들의 읽기, 왼쪽 눈으로 왼쪽 페이지를, 오른쪽 눈으로 오른쪽 페이지를 읽는 서번트 증후군 당사자의 읽기, 뇌 손상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읽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읽기, 글자에서 색이나 맛을 느끼는 공감각자의 읽기... 이 읽기의 경험들을 하나하나 깊게 탐구하며 저자는 읽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성찰한다. 우리가 '읽는다'라고 인식할 때, 그것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가. '읽기 아님'이라 느끼는 것, 그것은 진짜인가?
문해력의 위기인 동시에 문해력 교육에 대한 수요가 치솟는 이 시대에, 읽기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위기(혹은 위기 아님)의 근원을 살피는 일일 것이다. 읽기는 정말로 우리에게서 떠나고 있는가, 읽기가 떠난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읽기에 관해 가장 주요하고 긴박한 최근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내용이 반드시 사유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