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만든 사람>이후 5년, 최은미 소설집. 2021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에 선정된 이전 작품집의 한기 이후 이번 소설집에서 독자가 마주치게 되는 것은 무심히 내리쬐는 사악한 여름의 햇볕이다. 가차없이 부패하는 무른 과일의 향이 코를 가격할 때, 컨테이너 박스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통증처럼 등으로 쏟아질 때. 최은미의 소설은 독자를 쥐고 흔들어 인간의 무력함을, 계절의 난폭함을 감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육감적이나 공격적이거나 동물적인 문장들이 휘몰아치는 순간 코가 뚫리고 땀구멍이 열린다.
2025 김승옥문학상 대상 <김춘영>, 2023 이상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그곳>, 2022 이상문학상 우수상 <고별> 등 발표할 때마다 주목받은 소설들이 단단하게 묶였다. 최은미의 소설이 묘사하는 산간지방의 땅. 그 흙냄새를 함께 감각하며 앞에 놓인 '지방-공간 3부작' 세 편의 떳떳하지 못한 서술자의 목소리를 (<무장하는 날>, <정선>, <김춘영>) 순서대로 듣는 것으로 독서를 시작하면 좋겠다.
<무장하는 날>의 서술자는 '버섯이 자라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몸의 감각들이 고요하게 곤두서는 순간'을 기록한다. 이러한 문장을 읽는 동안 독자도 소설을 읽는 자신의 머릿속이 곤두설만큼 깨끗해지는 것을, 좋은 소설을 맛보는 미뢰가 예리해지는 것을 감각하게 된다. 믿음직한 소설가가 여전히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 더 좋은 소설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반갑다. 이 반환점을 돌아 최은미가 보여줄 다음 장이 벌써 기대가 되는 소설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