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2015년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2026년 늦여름 출간한 소설 <서성이다> 속의 서술자 안시찬의 직업은 소설가로, 그는 자신이 10년 전 발표한 소설에 이 문장을 썼노라고 언급한다. 안시찬은 과거에 살고 싶다. 그것은 아내가 아프지 않은 평행세계다.
토요일. 유튜브 방송 촬영으로 바쁜 하루를 보낸 소설가 안시찬은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운영자인 아내 이지수가 자신의 침실에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사흘 동안 안시찬이 페이스북에 도움을 청하고, 방송을 취소하고, 가족과 연락하고, 택시기사에게 화를 내고,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리다 엎드려 우는 그 모든 장면의 속도대로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듯이' 그의 감정이 밀려들어온다.
<한국이 싫어서> 기자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감수하고 호주로 떠날 결심을 한 계나. <5년 만에 신혼여행>을 떠난 셈이 빠른 HJ. '공공선에 대한 믿음은 확실하게 지니고'(62쪽)있는 <서성이다>의 이지수. 장강명의 문학을 따라 읽다보면 그가 묘사하는 한 인물의 조각을 어느새 좋아하게 되곤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탁월하게도, 효율적이게도 할 수 없는 일이라 늘 속도를 추구하고 때론 아내를 다그쳤을 소설 속 안시찬은 이제 복이 아닌 것을 빌며 엎드려 운다. 독자도 아내 이지수를 향한 안시찬의 곡진한 슬픔에 물들어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있는 곳을 서성이다 끝내 독자도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