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티지 오디오가 정이 가듯
남자도 이젠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하이엔드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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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를 좋아한다. 때론 음악보다 오디오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진공관 라디오부터 지금 듣고 있는 빈티지 오디오까지, 내가 음악을 들은 기기들을 생각하면 가끔 내 인생 전체를 오디오의 역사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한때 오디오에 빠져 있을 땐 중고 스피커나 튜너, 앰프를 사러 남의 집을 겁 없이 드나들었다. 남자 혼자 있는 집을 방문해 청음을 하고 무거운 스피커를 차에 싣고 오기도 했다. 집에 와서 케이블과 안테나, 잭을 연결하는 것도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전기와 전파에 대한 이해도 없이 그것들을 무사히 연결해 소리가 나기까지의 과정은 늘 어렵고 힘들었다. 간혹 연결이 잘되어 아름다운 음악이 예고도 없이 흘러나올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못 연결해서 잡음이 스피커를 찢어버릴 것처럼 쏟아졌다. 그때마다 나는 매뉴얼을 읽지 않는 습관을 탓했다. 찾아보고 읽어보면 될 것을 나는 늘 무턱대고 덤볐다. 대부분 기기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겨우 이해했다. 내겐 남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이 가는 대로 겁 없이 따라가고 나중에 후회했다.
어느 밤, 대리운전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도착했는데 주차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 울컥했다. 힘껏 곧추세운 등뼈들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빈티지 오디오가 정이 가듯 남자도 이젠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어느 밤, 대리운전 기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집에 도착했는데 주차까지 완벽하게 해주고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 울컥했다. 힘껏 곧추세운 등뼈들 사이로 매서운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이었다. 빈티지 오디오가 정이 가듯 남자도 이젠 연민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저자 김이정
1994년 『문화일보』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 시작. 소설집 『도둑게』 『그 남자의 방』 『네 눈물을 믿지 마』, 장편소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속의 사막』 『유령의 시간』이 있다. 『유령의 시간』으로 제24회 대산문학상 수상.
- *본 오디오클립은 KBS 라디오/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 KBS 3RADIO FM 104.9 MHZ 월- 일 07:00- 07:20 (재방 20:00-20:20) >>
- - KBS 1RADIO FM 97.3 MHZ 월-일 04:00- 04:20
- - KBS KONG / 팟캐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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