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다. 우리는 뭔가를 잃어버린 게 틀림없다. 태고의 언어를 심연 속에 품고 자라났지만 그걸 잃어버렸고, 어떤 발음이든 해낼 수 있는 조음(調音) 능력을 가졌지만 역시 사라지도록 만들었다. 막연했던 저 확신은 이 책을 다 읽을 때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강화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무너진 바벨탑 위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아니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실패한 바벨탑이 아닌지를 책은 묻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건 단지 언어뿐이었을까.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내부로부터 ‘실종' '시켜버린’ 건 또 무엇이었을까. 과거의 우리가 저질렀던, 우리도 기억하지 못하는 각자의 망각을 더는 망각하지 않도록 해주는 책. 이 책은 우리 모두의 뺨을 어루만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하고 따뜻한 손이다.